세상일은 알고보면 바쁜것도 없습디다

서각 초대작가

나의 이야기

죽도선생 중동이야기1

1 죽도선생 2018. 11. 25. 23:26

 

 

드디어 

1981년 10월17일

쿠웨이트로 출국하라는

전보를 받았다

그렇게 간절하게 원했든 중동행인데 ᆢ

 

 

 

 

 

 

 

 

 

 

 

 

 

 

 

 

 

 

 

 

 

 

 

 

 

 

 

 

 

 

 

 

 

 

 

 

 

 

 

민족의 정기마저 탐하든 일본이 망하고

동족상잔의 뼈저린 고통속에 신음하든 우리에게는

지하자원 조차도 변변치 못했다

국민들은 좁고 척박한 한반도 안에서 절망했고

배는 늘 고팠다

그러한 대한민국에 종잣돈을 만든것은

1차는 독일광부와 간호사 그리고 월남파병

2차는 중동에 노동자파견이다

78년~80년 2차 오일쇼크로 휘청거리는

한국경제의 중심을 잡아주고

한단계 도약시킨것이다

 

우리 세대는 아무렇게나

어영부영 세월을 보내면서 늙어 간것이 아니고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고

국민의 4대의무를 악착같이 지켜낸

사람들이다

당시 국민학교는 의무교육이었지만

나머지는 가정 형편따라 아니면 배움의 열망에 따라

야간 중고등학교를 다니든가

독학을해서 검정고시를 치르기도 했다

형편과 능력이 안되면 분수에 맞게 가르쳤고

어느 누구도 부모를 탓하거나

가난을 절망으로 생각 안했다

그리고 병역의무를 마치면

서너달 안에 철공소 보조공을 해서라도

분가를 했고 대다수 객지로 나갔다

달 셋방을 얻어 생활하고

대신에 재형저축 통장으로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술은 영원한 밥이다

열심히 일하면 돈을 많이 주고

국가는 세금을 그만큼 징수했다

그렇게 4대의무를 지키며

한시대를 책임지고 나갔든 우리들이었다

 

그 말을 하고 싶어서 1989년 6월 일기처럼 적은 글을

노동문학에 올렸고

그 이야기를 영원히 보관하고자 블로그에 올린다

 

아 ! 티그리스 강이여 그 강변이여 ᆢ

 

1981년10월17일

드디어 쿠웨이트로 간다

막연한 설레임이 아니고 꼭 해내야만 되는

절실함을 꽉 쥐고 트랩에 오르면서

밤하늘을 둘러보니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나는 군대 가기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셨어니

제대후 살아가려면 종잣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거세게 불어오는 중동 모래 바람에

몸을 맡기기로 계획을 세우고 크레인기술을 배웠다

3년 남짓 동안 노력한 댓가로 면허증도 따고

간절함으로 해외취업의 문도 열었다

그렇게 원하든 길을 떠나는데

기쁘면서도 왜 그리 서러운지ᆢ

 

언제나 살아야할 이유가 있듯이

혼신의 힘을 다 해야 할 이유도 있으니ᆢ

그러한 믿음과 각오로 일을 하다가

2년5개월만에 귀국하였다

그리고 2차는 다음에 이야기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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